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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아이의 마음을 안아주는 칭찬

by 제이다이어리 2020. 8. 21.

 

회사를 다니다가 지금은 전업주부가 된 지인이, 회사를 다닐 때는 힘들고 짜증나는 가운데서도 일이 잘 되거나 성과가 나면 칭찬을 받았었는데 주부의 일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칭찬을 받지 않는다며 기운빠져했다.
‘오늘도 요리가 정말 맛있어’ '집을 정말 깔끔하게 잘 치웠네!’ 같은 칭찬은 받을 수 있으려나. 그것도 아주 가끔.
칭찬받을 일이 잘 없다는 건 정말 기운빠지는 일이다.

 

이렇게 깔끔하면 칭찬 받겠지

 

칭찬을 받으면 우선 기분이 좋고, 자신감도 생기고 의욕도 생겨난다.
여러모로 칭찬이란 것은 사는 데 활력을 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 추게 한다.

 

누구에게나 칭찬은 중요하겠지만,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칭찬이 정말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칭찬은 자신감을 형성해주고 아이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때로는 서투르고 실수하는 모습에도 부모가 칭찬을 해 준다면 부모의 애정과 더불어 본인 스스로에 대한 신뢰감도 높아질 것이다.

 

반면 지나친 칭찬은 독이라는 이야기도 많다.
당연한 일을 했음에도 칭찬을 받거나
별거 아닌 일에도 칭찬을 받게 되면 아이에게 자만심이 생길까봐 부모는 칭찬을 꺼린다.
실제로는 그다지 잘하지도 않았는데 칭찬을 받게 되면 본인이 잘했다고 만족하고 더 이상 도전하지 않게 될까봐 부모는 또 칭찬을 꺼린다.

 

과한 칭찬은 아이에게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다, 재능과 같이 아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칭찬을 하게 되면 칭찬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는 실패하면 안된다는 강박을 갖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과정이 아닌 결과에 대한 칭찬은
좋은 결과가 칭찬의 조건이라는 인식으로 연결되어
뭔가를 잘 할 때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여겨질 수 있다.

 

BEASTARS

 

https://gendai.ismedia.jp/articles/-/74869?page=2
한 장 더 그려볼까?’선생님 말씀에..5살 아이의 마음을 안아 준 엄마의 행동

 

 

「もう1枚描こうか」と先生に言われた絵…5歳児の心を救った母の行動(板垣 巴留)

雑誌「Kiss」にて連載されていた板垣巴留さんのエッセイマンガ『パルノグラフィティ』が、8月6日に単行本として発売された。同日に最新刊の20巻が発売となった『BEASTARS』で多くの漫画賞も

gendai.ismedia.jp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어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보니 꽤나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다.

'이타가기 파루(板垣巴留)'는 BEASTARS(비스타즈)라는 만화의 작가로 비스타즈로 수상도 많이 했고 매니아층도 꽤 있는 것 같다.
비스타즈는 어른판 주토피아라는 평도 있고 1984나 동물농장이 연상된다는 평도 있다.

 

링크된 만화는 '파르의 그래피티'라는 단행본에 실린 에세이 만화 중 작가가 유치원에 다닐 때의 에피소드다.

 

파르 그래피티

 

어느 날 선생님이 '다 같이 바다를 그려보자'고 제안하자 어릴때 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파르에게 불현듯
강렬한 영감이 떠올랐다.
바로 얼마 전 영화 '조스'를 봤던 탓인지 바다에 대한 어마어마한 이미지가 있었던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걸작을 만들어내리라 투지를 불태웠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 그림이 떠오를 정도로
5살 파르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작품을 완성했다.
그런데 게시판에 그림을 전시하려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파르..이 그림은..좀 슬픈 그림이니..다른 그림을 다시 그려볼까?"


파르가 그린 그림은
새빨갛게 칠해진 바다위로 사람의 팔과 다리가 보이는 그림이었다.
다시 그리자는 선생님의 말에 파르는 너무나 낙담했다.
의기소침한 상태로 그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림을 본 엄마가 말했다.
"파르가 그린거야?잘 그렸네"
엄마의 말에 파르는 미소지었다.바퀴벌레로 산더미를 그려도 선혈이 낭자한 바다를 그려도 엄마는 항상 파르의 그림을 칭찬해 주었다.


칭찬받은 걸로 파르는 이미 만족을 했는데 엄마는 그 그림을 식탁 비닐 매트 아래에 끼워두셨다.
한동안 식구들은 새빨간 피바다 위로 팔과 다리가 보이는 그림을 깔고 식사를 했다.
5살 파르는 그게 너무 기뻤다.
그 뒤로도 쭉 파르네 식탁에서는 파르의 개인전이 열렸다.

 

나는 얼마나 나의 아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가.
나의 기준으로 잘했다 못했다 판단하고 아이에게 그 기준을 주입하지 않았는가.
자유롭게 뛰놀기를 바라면서 테두리를 쳐 두지 않았는가. 내가 파르의 엄마였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 어떤 그림을 그려와도 엄마가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전시해주는데
과연 아이의 마음이 비뚤어지거나 엇나가게 될까?
칭찬의 역효과고 뭐고, 이런 저런 이론 따위 다 필요없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아이의 기를 얼마나 살려주는게 맞는지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너무 기를 살려주면 버릇없고 자기만 아는 사람이 될까봐
반대로 기를 안 살려주면 아이가 주눅들고 해야할 말도 제대로 못하게 될까봐.
정답은 적당히 기를 살려주면서 적당히 제재를 하는 거겠지.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맞추기 어려운게 '적당한' 선 아닌가.


적당하게 행동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너무 어려울 때는 그냥 기를 살려주자. 
잘난척 좀 하고 나대면 좀 어떤가.

 
작가는 얼마나 마음이 만족스럽고 애정으로 충만했을까. 내 아이의 마음을 저렇게 보듬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저런 엄마라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써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한 인간으로써 부러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