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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 짓기

인테리어 예쁜 집

by 제이다이어리 2024. 1. 23.

비록 온라인이지만(얼마나 좋은 세상인지!)
종종 다른 사람들이 집안을 꾸민 모습을 구경하다 보면, 감탄이 나오고 기분 좋게 감상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가 죽곤 한다. 그들은 어쩌면 그렇게 센스 터지는 소품들과 색감들과 배치와 구조를 알고 쓰는 걸까.

참고용으로 모아둔 이미지


꽤 오래전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였다. 당시 도쿄에서 깨끗한 방 하나를 빌리려니 월세가 120만 원 정도였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라 두 명의 룸메이트를 구해 셋이서 함께 살았었다.
도쿄 중심가는 아니어서 그래도 그 가격에 베란다도 있고 부엌과 방도 분리되어 있고 집 상태도 좋은 편이었다. 방에는 2층 침대가 있었고 아마도 2명이 사용했다면 나름 쾌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셋이었고 당연히 집 안은 복작거릴 수밖에 없었다. 방 하나를 셋이서 나눠 쓸 정도의 재력을 가진 우리가 방을 예쁘게 꾸민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저 깔끔하게만 쓰면 다행이지. 게다가 1년 후엔 한국으로 돌아갈 텐데 없는 살림에 방을 꾸민다는 건 사치가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사실 예쁜 집에 살고 싶었다. 나중에 꼭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집에 살아야지. 꼭 예쁘게 꾸미고 살아야지.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학원에서 조금 더 가까운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함께 지내던 룸메이트들은 그 집에 계속 살았고 내가 빠진 자리에는 새로운 친구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깨달았다.
예쁜 집에서 살고 못 살고는 돈이 정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내 자리에 새로 들어간 친구는 푸드 스타일리스트를 목표로 일본에 공부를 하러 온 것이었는데 그 시절에는 푸드 스타일리스트라는 자체가 생소해서 뭘 공부하겠다는 건지 이해하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그런 걸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게 의아했다. 아무튼 그런 생소한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부터 특이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싸이월드에 올린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내가 깨끗하게 사는 게(그것도 쉽지 않았지만) 최선이었던 공간을 예쁘게 만들어 살고 있었다. 큰돈을 들인 것도 아니었다. 그냥 벽 한 쪽에 작은 엽서와 작은 포스터, 사진 등을 적당히 붙여둔 정도였다. 가끔은 꽃 한 송이가 있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알던 공간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여실히 느꼈다. 이런 게 타고난 감각이구나. 내게 없는 건 돈보다 재능이었구나.

음...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못 되겠네...


그 뒤로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내 집을 갖게 되기까지 나는 한 번도 집을 꾸며 본 적이 없다. 가끔 공들여 예쁜 물건을 사보기도 했지만 집을 꾸민다는 건 그야말로 조화의 문제라 소품 몇 개로 집이 예뻐지지는 않았다. 집이 너무 안 예뻐서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다 뜯어고치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센스만으로 집을 꾸미지 못하니까, 전셋집에 큰돈을 들일 수는 없으니까, 다음에는 꼭 더 좋은 집으로 가야지 하는 생각만 하며 지냈다.

그러다 집을 사게 되면서 드디어, 전체적으로 집에 손을 댈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머릿속에서 바라던 집과 괴리감 넘치는 현실의 집 사이에서 참아왔던 욕망을 열심히 분출해 보았다. 집을 고치고 새롭게 만드는 과정은 고되지만 재미있었다. 공사가 끝나고 집이 완성되자 이 집의 부족한 점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원하는 걸 다 구현할 수 없기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이에 나의 보는 눈이 달라져버리고 말았다. 더 마음에 드는 집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막 공사한 집을 다시 건드리긴 아까우니까 다시 이사를 가야겠다(응?).

공들였던 주방

그리고 나는 정말 이사를 했다.  새 집에 어울릴만한 테이블을 고르는 데 5개월이 걸렸고, 냄비받침은 일주일 넘게 맘에 드는 걸 못 찾았다. 아이들 방은 침대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구조를 계속 바꿔보고 있고, 마음에 드는 아이스박스와 도마를 구입했다. 현관 전실은 너무 좁아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고심 중이다.
취향과 안목이 조금씩 변하면서 전보다는 만족스러운 모양새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예전보다는 쓸 수 있는 돈이 있으니 조금 비싸도 마음에 드는 것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타고난 재능과 감각은 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부족한 돈과 센스를 벌충하려니 에너지가 너무 필요해서 문제지만.

그런데 사실은 좀 즐겁다. 집을 꾸미고 예쁜 소품들을 구경하고 공간의 레이아웃을 바꾸고 하는 일들이 조금 즐겁다. 그렇다면 이쪽이 나의 길인가? 하지만 나에게는 대단한 감각도 재능도 없는데?
더구나...
내 집은 얼마든지 머리 싸매고 매달려도 스트레스가 아니지만 그게 남의 집이라면, 남의 취향과 남의 일정에 맞춰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을 안다.

아아 어렵구나.
이 나이에 하는 진로 고민이란(그게 어디 쉬운 때가 있겠냐마는).